세조 가계도 한국사 공부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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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조선 왕조 가계도

세조 가계도 한국사 공부해보기

by 전짜장 202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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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조의 가계도 조선의 제7대왕 세조 즉, 수양대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조는 1417년 세종의 둘째 아들로 출성해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입니다. 휘는 유, 자는수자, 시호는 혜장이며, 윤번의 딸과 혼인하였고, 왕위에 등극하여 정희왕후가 되었죠. 세조는 형이였던 문종에 비해 학문보다는 무예에 능하였고 병서에 밝았이며, 진평대군, 함평대군, 진양대군이라고 칭하여지다가 1455년에 수양대군으로 봉해졌습니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되었고, 12세의 어린나이로 단종이 즉위하게 되자 세조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던 인물입니다.

 

 

 

세조 가계도에서 세종의 둘째아들이였던 수양대군때는 무예와 학문 모두 훌륭하였기에 아버지인 세종과 문종의 여러 업무를 함께 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창제에도 참여하였으며, 석가모니의 공덕을 기린 <석보상절>을 훈민정음으로 지어서 아버지인 세종에게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문종의 <동국병감> 편찬은 수양대군에게 맡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종이 죽게 되면서 야망을 드러내어 왕위를 친탈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세조 가계도에서의 세조는 피의 군주라고도 불리는데요, 세조의 업적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동생들과 조카, 사돈 등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왕위에 올랐던 왕입니다. 세조는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컸는데, 단종이 즉위하자마자 계유정난을 일으키면서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후 단종을 상왕으로 올린 후 사육신 등이 일어나자 노산군으로 강등을 시켜버리고 살해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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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가계도

 

정희왕후 윤씨

세조 가계도에서 정희왕후 윤씨는 왕이 되기 이전부터 혼인하였던 상황이였는데요, 세조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계획이 누설되어 주변으로부터 강한 비난과 압박을 받게 되었는데 정희왕후는 수양대군에게 갑옷을 입혀주며 군대를 일으키도록 적극 격려하였다고 합니다. 정희왕후에게서 예종인 조선의 8대 왕이 태어나게 됩니다.

 

근빈 박씨

세조 가계도에서 근빈 박씨는 세조의 후궁 중 유일하게 자식을 낳아 키운 후궁이라고 합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만나 첩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으며, 계유정난 이후에 세조가 왕으로 즉위 하면서 종 2품 숙의로 봉작되었다고 합니다. 

 

 

세조의 업적

6조 직계제 시행

6조 직계제란 왕의 명령을 여섯 장관에게 직접 내리고 보고도 왕에게 직접하는 제도인데요, 태조 이방원때 시행했던 6조 직계제는 세종대왕때 의정부 서사제로 바뀌면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정치형태로 바뀌었었지만, 세조는 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게 됩니다. 

 

집현전 폐지

현명한 학자들을 모으고 교육하는 학문기관인 집현전 학자들이 단종복위운동을 일으키게 되자 세조는 역당의 소굴이라며 집현전을 폐지하고, 공부하기 위해 모인 경연에서 다루는 주제가 폭군을 다루는 것 같아 경연 자체도 폐지시켜 버렸습니다. 이는 왕권강화를 위해 신하들이 교육 할 수 있는 제도 자체를 없애 버린 것 같습니다.

 

 

경국대전 편찬

조선 초에 만들어졌던 <경제육전> 과 <조선 경국전>이라는 법전이 있었으나,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만을 위한 체계적인 법전이 필요하였는데, 세조는 이 <경국대전>을 편찬하게 되었으며, 이는 성종때에 완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재정을 담당하는 법전인 <호전>과 형벌을 담당하는 법전 <형전>은 세조때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함에도 불구하고 신하들과는 자주 술자리를 가졌으며, 원만한 관계를 잘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조는 불교에 애정을 쏟았다고 하는데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로, 나라 초부터 유교를 숭상하였는데 세조는 대대적으로 불경을 간행하였고, 원각사라는 절도 세우게 됩니다.

 

이 외에도 직전법을 실행하여 국가의 수입을 늘리는 등 타고난 자질로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세조는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가다듬고 군사제도를 개혁하여 호패법을 강화하여 국방을 튼튼하게 하였으며, 북방 개척에도 관심을 기울여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도 몰아낸 업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왕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무시무시한 위용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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