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가계도 역사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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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조선 왕조 가계도

영조 가계도 역사 알아보기

by 전짜장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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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조 가계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조 가계도에서 영조는 1764년 9월 13일 숙종의 네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1724년 8월 30일에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맏아들이였던 경종이 있었기에 바로 세자로 책봉되지는 못했으며, 형은 경종이 지병과 일련의 사건으로 사망하게 되자 그의 동생이였던 영조가 왕좌에 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조는 당시 백성들에게 억울한 일이 있을때 왕에게 알릴 수 있는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킨 정책으로 유명한 왕 이죠.

 

 

 

 

영조가계도에서 영조의 휘는 이금이며, 장수왕으로도 유명한데,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는 83세의 나이까지 장수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시대 평균나이를 가늠하더라도 꽤나 오래 산 왕이죠. 

 

영조는 조선후기 52년동안 중흥기를 이끌어갔는데 역대 왕 중에서도 오래 산 만큼 재위기간 또한 가장 긴 왕이였습니다. 영조는 그 어떤 왕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한것으로 유명하였는데, 임금이 신하들보다 경연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했던 왕이였습니다. 그래서 영조 재위 기간에는 많은 업적이 있었는데, 그 부분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조의 업적

 

신문고 제도 부활

백성들의 불만과 고민을 들을 수 있는 창구를 개방

사치 교정 및 농업 장려

양반들의 사치와 낭비를 폐습할 수 있도록 장려을 하였으며, 농업 또한 장려하여 원활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노력함

세금 제도 개편

균역법을 변경하여 민중의 부담을 줄임

 

이 뿐만 아니라, 탕평책을 통해 당파에 구분이 없는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유능한 학자를 발굴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합니다. 강력한 왕권강화를 통해서 후대에도 힘을 실을 수 있도록 노력한 왕이 영조 였습니다.

 

탕평책은 당파에 구분없이 인재를 두루두루 등용하기로 한 정책인데 이때 당파는 소론과 노론으로 구분 했습니다. 영조도 노론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본인이 왕위에 오른뒤로도 인재등용을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정책으로 인해 소론과 노론사이에서의 갈등과 싸움은 끊이지 않았으며, 이 싸움으로 사도세자가 죽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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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가계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얘기는 빠질수가 없는데요, 영조의 첫번째 아들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되었고, 오랜시간 아들이 생기지 않았는데, 그러던 와중 두번째 아들인 사도세자가 태어나게 됩니다.

 

 

 

사도세자

 

영조 가계도에서 사도세자의 경우 어렸을적에 신동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품에서 공부를 배우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책을통해 글자를 읽히는 모습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어렸을때부터 영리하여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계속되는 교육으로 사도세자는 영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고, 스트레스를 계속하여 받게 되었으며, 사도세자는 정신적 문제로 인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문을 멀리하였으며, 각종 방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1761년 영조 몰래 관서지방을 다녀온 것이 알려진 뒤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이는 더욱 벌어졌고, 1762년 영조는 결국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게 되었으며,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도록 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 지 8일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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