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가계도 세종대왕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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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조선 왕조 가계도

문종 가계도 세종대왕의 아들

by 전짜장 202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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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종대왕의 아들인 문종 가계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종은 1414년에 태어났으며, 1452년에 생을 마감하였는데요, 왕으로서의 재위기간은 1450년 ~ 1452년으로 2년밖에 재위를 하지 못했습니다. 문종 가계도에서 문종의 이름은 향, 자는 휘지, 시호는 공순으로 세종의 맏아들이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였습니다. 문종은 김오문의 딸과 첫 번째로 혼인을 하였으나, 자질 부족으로 김씨가 폐출되었고, 봉여의 딸과 두번째 혼인을 하였으나, 봉씨는 동성애에 빠져 폐출되었다고 합니다. 문종 가계도에서의 현덕왕후는 후궁으로 들어왔다가 세자빈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문종 가계도에서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인품이 관후하였다고 하는데 1421년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이후 약 30년 간 세자로 있으면서 문무관리를 고르게 등용하도록 하였으며, 언로를 자유롭게 열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민정파악에 힘쓰는 등 세종을 보필한 공이 컸다고 합니다. 1445년 세종이 병들고 문종은 그를 대신해서 국사를 처리하였으며, 1450년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 해 동국병감이 출간되었으며, 1451년에는 고려사와 1452년에는 고려사절요 등이 편찬되었으며, 병제를 정비하여 3군 12사를 5사로 줄였으며, 병력을 증대시킨 업적이 있습니다. 이 병종은 5사에 배분하였으며, 유학이나 천문, 역법 및 산술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나, 몸이 약하여 재위 2년 4개월만에 병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의 현릉입니다.

 

 

문종대왕의 불행

 

세종대왕의 맏아들로 왕위에 오른 문종이지만, 순탄치 않았던 삶을 지냈는데요, 문종은 1421년 우리나이로 치면 8살에 세자로 책봉이 되면서 다음 왕위를 이를 후계자로 공식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인 5살이였던 1418년에는 외할아버지 안효공 심온이 역모로 몰려 죽게 되었고, 외할머니나 외숙, 다른 가족들이 천인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가산이 적몰되어 몰락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인 소헌왕후 또한 한때 폐출 위기까지 몰렸었다고 하네요.

 

1424년 우리나이로 11살이었던 그 해에는 누이였던 정소공주가 13살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유달리 정소공주와는 우애가 깊었다고 하여 이 죽음은 큰 아픔으로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두번의 부인의 폐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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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업적

 

조선 제 5대왕이였던 문종의 업적은 동국병감과 고려사 편찬에 힘을 쏟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문종은 몸이 허약해서 2년 4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을 보내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업적은 있었습니다. 왕으로서의 재위는 짧았지만, 세자로 20여년 동안 있으면서 세종을 보좌하여 정치를 익혔고 왕으로 재위하고 나서는 민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성군입니다.

 

국방강화

문종은 병법에 관심이 많아서 재위 2년여 동안 병력의 조직과 인원, 군법 및 용병술 군대 휘장과 표시 등에 대해 군사에 대한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적은 '오위진법'을 펴냈다고 합니다. 12사 체제의 중앙군사제도를 5사 체재로 바꾸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제도도 만들게 되었는데 이는 조선 기본 군사제도로 자리잡게 됩니다.

 

 

 

고려사 편찬

문종은 병석에 누워있으면서도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조선의 정치, 제도 및 문화를 정리하고자 고려사와 고려사 절요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이는 고려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책이라고 합니다. 고려사는 1395년에 썼던 고려국사를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하였고, 고려사 절요는 먼저 출간 되었던, 고려사를 바탕으로 하여 연대순으로 사건을 다시 정리 했다고 합니다.

 

동국병감 편찬

문종은 세자때부터 진법을 다루어 왔다고 하는데, 이를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병법의 기반을 닦았으며, 군사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동국병감을 편찬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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