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가계도, 문정왕후의 아들 조선 13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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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조선 왕조 가계도

명종 가계도, 문정왕후의 아들 조선 13대왕

by 전짜장 202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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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의 제13대왕 명종 가계도에 대해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조선 제12대왕이였던 인종이 문정왕후에 의해 일찍 죽게 되면서 그의 동생이자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명종

명종은 조선 제 13대왕으로 재위는 1545~1567년 동안 하게 됩니다. 명종의 이름은 이환, 자는 대양이며, 본관은 전주 입니다. 중종의 둘째 적자였으며 인종의 아우였습니다.

 

중종은 제1계비인 장격왕후 윤씨와의 사이에서 12대왕인 인종을 낳고, 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와는 명종을 낳게 되었는데, 이들 두 계비는 같은 파평 윤씨였지만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민감하게 대립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대리권자였던 장경왕후의 오빠였던 '윤임'과 문정왕후의 아우였던 '윤원형'이 서로 국구가 되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일찍부터 반목하였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윤임을 대윤, 윤원형을 소윤이라고 칭하였다고 합니다.

 

처음 인종이 세자로 책봉이 될 때에 문정왕후는 표면적으로 이를 옹호하였다고 하나, 자신이 명종을 낳자 왕실의 분위기는 달라졌다고 합니다. 장경왕후의 오빠였던 '윤임'은 '김안로'등과 함께 언제 문정왕후가 인종을 몰아내고 자신의 아들인 명종을 세자로 옹립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여 문정왕후와 알력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왕위계승 문제는 일단락 되어 윤임이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으나,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죽고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게 되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정세는 급 반전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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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이로 인해서 나라의 실권을 잡게 된 '윤원형' 일파는 윤임이 그의 조카이자 중종의 여덟째 아들인 봉성군에게 왕위를 옮기려고 한다는 소문을 내고, 인종이 죽을 당시에 성종의 셋째 아들이였던 계성군의 양자 계림군을 옹립하려고 했다는 구실로 하여, 윤임와 유관 유인숙등을 사사하고 이들의 일가는 물론 그들을 따르던 사림을 유배시키게 되는 이른바 을사사화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문정왕후와 윤원형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일어났으며, 1547년에는 여주가 나라를 망친다는 내용으로 문정왕후의 권세를 비난하게 되는 내용의 양재역벽서사건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이것을 핑계로 삼아 대윤의 나머지 무리들의 소행으로 말게되고 이들을 모두 숙청하는 옥사가 일어났으며 윤원형의 권세는 더욱 강해졌다고 합니다.

 

명종의 죽음

 

1565년 문정왕후가 죽고 명종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34세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되었습니다.

 

 

 

 

명종 가계도

 

명종가계도에서 보다시피 명종에게는 7명의 부인과 1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명종 가계도에서 첫번째 부인은 인순왕후 심씨이며 아들로는 순회세자가 있었습니다.

 

명종과 숙빈이씨, 숙의 신씨, 숙의 정씨, 숙의정씨(동명이인), 숙의 한씨, 숙의 신씨(동명이인) 에게서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명종가계도에서 명종과 인순왕후 사이에서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1563년 13세에 죽게되고, 왕위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이 계승하였는데, 그가 바로 선조입니다.

 

다음은 선조에 대해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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