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 가계도 조선 20대왕, 장희빈의 아들 비운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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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조선 왕조 가계도

경종 가계도 조선 20대왕, 장희빈의 아들 비운의 왕

by 전짜장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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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의 20대왕 경종 가계도 및 경종 업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종 가계도에서 경종은 조선 19대왕이였던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경종 가계도에서 경종의 부인은 단의왕후 심씨와 선의왕후 어씨 두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종 가계도에서 경종의 자식은 없었습니다.

 

 

단의왕후 심씨(정비)

경종 가계도에서 단의왕후 심씨는 청은부원군 심호의 딸로 태어났으며 1696년 세자빈에 간택되었으며, 경종이 즉위한지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선의왕후 어씨(계비)

경종 가계도에서 선의 왕후 어씨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로 태어났으며 1718년 세자빈에 간택되었습니다. 경종이 즉위 한 후에 왕비가 되었지만 자식을 낳지는 못했습니다.

 

 

경종

경종은 1688년에 태어났으며 1724년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경종의 재위기간은 1720년~1724년으로 왕으로써의 재위는 4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경종의 이름은 이윤, 자 휘서, 숙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장희빈 입니다. 경종은 숙종이 27세의 나이로 다소 늦은 나이에 본 첫 아들이였으며,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장희빈이 낳은 아들이라 태어난 지 두달만에 원자로 봉해졌으며, 3살때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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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은 고작 열 네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숙종에 의해 어머니였던 장희빈이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해 병세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경종의 몸은 허약 했습니다.

 

희빈 장씨였던 장희빈이 중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인현왕후가 다시 중전이 되면서 서인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때 서인끼리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게 됩니다.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연잉군(훗날 영조)은 노론이 지지하고, 소론은 경종을 지지했습니다. 숙종 당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희빈 장씨 장희빈의 처리 문제로 결곡 노론이 힘을 얻으며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됩니다.

 

병약하고 불안했던 경종은 왕위 계승자로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숙종은 노론 세력을 불러 교체의 뜻을 비추고 노론은 연잉군의 왕위 계승을 통하여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려고 했으나, 숙종의 승하 전까지 경종은 꼬투리가 잡히지 않도록 신중하게 정치를 이끌어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하여 1717년 숙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며 1720년 숙종이 승하하게 되자, 임금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러나 노론은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임금이 연약하니 연잉군(훗날 영조)을 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아이운 세제로 삼아야 한다고 지속해서 말 했으며, 세제인 연잉군이 대리정치를 해야한다고 말하며, 살아있는 임금이였던 경종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경종을 추대하고 있는 소론의 입장에서는 참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었겠죠.

하지만 경종은 이런 노론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복동생이였던 연잉군을 세제로 삼았으며, 대리청정도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선의 정국은 극심한 혼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목호룡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목호룡은 노론에 접근하여 연잉군 편에 서면서 정치를 시작하였지만, 경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경종을 추대하는 소론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노론이 경종을 죽이려고 했던 일을 일러 바치게 되고,  이 일로 인해 노론은 모조리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경종은 재위기간이였던 4년 동안 위태롭게 왕위를 이어 왔는데, 몸도 허약했을 뿐더러,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세까지 있었던 경종은 증세가 더 악화되어 재위기간 4년만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영조를 다음 왕으로 계승했던 경종은 눈썰미가 탁월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복 관계였던 영조와 형제간의 우애도 깊었다고 합니다. 경종은 노론을 차단해도 연잉군을 보호하고 다음 왕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썼다고 하는데요, 다행히도 영조는 조선 제 21대왕으로 조선 최고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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